얼마 전 방송에서 어떤 여자애가 인터뷰하는 걸 봤다. 서른 살 정도 된 여자애였는데... 해탈했더라. 아마 자기 자신은 모를 것이다. 자기가 해탈했는지.
불쌍했다. 그 나이에 얼마나 험한 인생을 살고, 얼마나 모진 세월을 겪었으면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해탈을 할 수가 있나.
이 시대에...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걸 구분할 수 있게 된 이후에 해탈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방송에서도 실제로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 여자애가 처음이었던 거 같다.
수많은 중대가리들이 큰 스님이랍시고 방석 깔고 앉아서 사람들 절 받아먹으면서 잘난 소리 떠들지만 그들 중 해탈한 사람은 없었다. 수많은 도인 나부랭이들 중에서도 해탈한 놈은 없었다. 신부, 목사, 그 외에 재야에서 한가닥 한답시고 잘난 소리 하는 놈 중에 말빨 좋은 놈들은 많았지만 해탈은 아니었다. 당연히 깨달음을 얻은 놈도 없었다. 그냥 머리가 좋고 말빨이 좋아서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었다.
깨달음이라는 거, 해탈이라는 거, 중들이 벽 보고 앉아서 천일, 만일을 고행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성현들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수많은 서적을 읽고 외운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산속에서, 오지에서 도를 닦는답시고 사람으로서 이겨내기 힘든 고행을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탈도 깨달음도 우리네 인생사를 통해서, 그리고 그 인생이 관통하는 세월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근데, 그 어려운걸 그 여자 아이가 해냈더라. 가련하게도...
이 블로그 태을선원에는 50여 개의 글이 있다. 2008년 첫 글을 쓰고 지금 2023년이 되는 동안 그 정도밖에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을 꼭 많이 쓸 필요는 없으니까.
그 글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증산이 틀렸다 라는 글에서는 (링크 걸었다. 전문이 읽고 싶으면 클릭해라)
사상을 버리면 사상이 자유로워진다. 신념을 버리면 신념이 자유로워진다. 성현들께서 그토록 버리라고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버리면 모든 게 자유로워진다. 사상도 신념도 자유로워진다.
언론은 국익이 아니라 진실을 쫓아야 한다. 라는 글에서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래서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 그거 해서 뭐 할 건데? 그게 영광만 있을 거 같나? 그걸 위해서 얼마나 모진 세월을 겪고 얼마나 험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그건 생각 못하나!
이 노래 마음에 안 든다! 에서는
우리네 인생사 미련과 후회가 없다면 그것을 어찌 인생이라 할 수 있겠나? 미련을 남기고 후회를 안고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사 아니던가?
윤회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작별은 죽을 때 하는 게 아니라, 다시 환생할 때 하는 거더라"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 (이것이 신앙이다! 아님 말고ㅋㅋㅋ) 에서는
옛 성현들과 선각자들의 인생을 흠모하며 그들의 삶을 본받으려는 방법 중 하나가 신앙 이라고 했고
세상을 구원 한다고? 세상이 뭔데? 우리들 인생이 모여서 세상이 이루어 진다는 생각은 안해 봤나? 우리들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게 세상을 구하는 거라고 생각 안하나? 그러니까 제발 좀 멀리 있는 세상 구원 하려고 하지 말고, 너희들 인생부터 구원해. 제발 좀.
그 외에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기도하지 않는다. 와 맹자의 구라! 에서는 성현들의 가르침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말했고, 정의로움이란!(나보다 잘 설명할 수 있는 새끼 있으면 나와봐! 100원 줄께!) 와 정의로움에 대한 두번째 이야기.(강한자의 정의로움! 약한자의 정의로움!) 에서는 정의로움의 실체에 대해서 말했다.
그중 여러 번 반복해서 한 말도 있다.
"그 씹어먹을 놈의 도 같은 거 그만하자. 그거 해서 뭐 할 건데? 깨달음? 좃도 그거 하면 또 뭐 할 건데?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 깨달음 없어도, 도 같은 거 몰라도 잘 살잖아. 안 그래?" 이 말은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한 거 같다.
정리해 보니 그동안 많은 말을 했다. 들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나름 열심히 떠들었다.
이 블로그 태을선원을 만든 후, 지난 15년간 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정의로움의 실체도 알았으며, 성현들께서 자신들의 가르침을 후손들이 뛰어넘기를 바란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해탈, 깨달음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도 알게 됐다.
근데 이걸 알고 싶어서 안게 아니다. 살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됐다. 면벽수도도 아니고 자기 몸을 찢는 만신창이 고행도 아니고 수많은 서적을 읽은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모진 세월을 겪고, 험한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더라.
전에도 여러 번 말했지만 이 시대에는 깨달음을 팔아서 먹고사는 새끼들이 너무 많다. 흔히 말하는 도(道) 장사꾼들.
그게 가능한 게 사람들의 갈증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게 정의로운 건지! 어떻게 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을 쫓았고 성현들에게 그 답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성현들은 그 답을 주지 못했다. 그게 가르친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지식과 지혜를 가르칠 순 있어도 깨달음을 가르칠 수는 없었던 거다.
깨달음은 구한다 하여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내 뜻과는 상관없이 구할 수도 있고,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게 깨달음이더라.
지긋지긋할 정도로 험한 인생을 살고 모진 세월을 겪어도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버티고 이겨내면, 악만 남든지 아니면 해탈을 하게 된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그러고 보니 악만 남는 것과 해탈은 한 끗 차이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한심 할 뿐이지!
남들 안 하는 고생하고 남들 안 겪는 일 겪고 산 게 뭐 큰 자랑인가! 얼마나 못난 인생이면 그렇게 살았겠는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운이 좋아 죽지 않고 살아서 깨달음을 얻은 것뿐이다. 그것이 영광된 일만은 아니란 말이다.
내가 정말 살고 싶었던 삶은 굴곡 없는 평범한 삶이다. 한평생을 그리 평범하게 굴곡 없이 살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해탈? 깨달음? 그 따위 것 개나 줘버려라!
다시 말하지만 그런 것 없이도 잘 살 수 있다. 그런 거 몰라도 잘 사는 사람 많다. 안 그런가?
그러니 오늘을 잘 살자. 그리고 내일도 잘 살 수 있게 노력하자. 노력한다고 그렇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잘 살 수 있게 노력하자.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가능한 일이다. 쉽진 않겠지만 노력할 가치는 있다. 정말이다. 내가 보증한다. 그렇게 신뢰 가는 보증은 아니겠지만^^
그리고 어제는 잊어버리자. 주성치가 나오는 영화 선린기연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인생사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후회하는 것이니..." 그러니 어제는 잊어버리자. 그래야 고통스럽게 후회하지 않을 테니... 그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씨발...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모두에게 태을이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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